여행이야기

봄 산책로를 따라 떠나 보자

가치노을 2009. 4. 10. 15:58

봄은 길을 단순한 통로가 아닌, 하나의 목적지로 만드는 계절이다. 봄의 길에서는 발걸음이 알아서 속도를 늦추고, 호흡 또한 절로 깊어진다. 더욱이 봄의 절정인 5월이 되면 사랑스러울 만큼 나긋해진 바람과 무더위가 엄습하기 전의 온도로 인해 길은 최적의 여행지로 변신한다. 도심 바깥의 메타세쿼이아 길부터 도심 속에 숨은 하늘길까지 봄의 산책로가 보내온 초대장을 펼치면 마음은 벌써 봄 길을 달린다.
 
■ 산책, 걷다보면 자연에 동화되다

아름다운 풍경을 벗 삼아 교외에서 만나는 길은 사실 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그림이 된다. 떠나오는 설레임으로 즐겁고 끝없이 펼쳐진 자유로움이 있어 신나는 길 위의 여행. 일부러 바라지 않더라도 자연을 벗 삼다 보면 스트레스가 덜어지면서 자연히 건강까지도 챙길 수 있으리라. 

▶ 모 기업에서 해마다 주최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 사진공모전에서 빠지지 않는 길은 단연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이 길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택시기사인 민우가 택시를 타고 한가로이 달리던 첫 장면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변에 무려 7km에 걸쳐 조성된 이 길은 녹음으로 울울창창한 숲속 길을 연상시킨다. 한 그루당 키가 20m를 훌쩍 넘는데다 가지마다 풍성하게 녹음이 우거져 있는 까닭이다.

▶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보다 규모는 작지만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 바로 담양과 닿아있는 전남 순창 강천사 부근의 길이 그곳이다. 순창 읍내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강천사로 연결되는 792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약 3km에 걸쳐 그림 같은 메타세쿼이아 길이 펼쳐진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인파로 붐비는 것에 비해 이곳은 지방도로인 탓에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눈에 띈다.
▶ 순창 강천산을 끼고 나 있는 왕복 5km의 산책로 역시 길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지가 되는 곳이다. 산 입구인 병풍폭포에서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되는 구장군폭포 앞까지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없는 평지인데다 황토 위로 고운 모래까지 깔려 있어 걷기에 부담이 없다. 그래서 햇살이 나긋나긋한 날이면 맨발로 산책을 즐기는 이들도 곧잘 눈에 들어온다. 청정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비롯해 강천사, 현수교, 병풍폭포 등 이곳에서의 산책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 임실 옥정호 주변의 산책로 역시 명물 중의 명물. 전북 임실군 운암면과 강진면, 정읍시 산내면 일대에 걸쳐있는 드넓은 호수인 옥정호 주변의 749번 지방도로는 드라이브와 산책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코스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호수 위에서 산란하듯 반짝이는 햇살의 무리들과 산자락이 투영된 호수면, 안개에 휘감긴 봉우리 등 쉬 접하지 못하는 자연의 비경들을 덤으로 구경하게 된다.

▶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유명한 청주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도 운치 있는 산책로로 손꼽히는 곳이다. 청주의 진입로인 청주 인터체인지에서 가경천 죽천교까지 총 6km에 걸쳐 터널을 이루는 플라타너스 길은 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찾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특히 봄에서 여름에 이르는 신록의 계절에는 잎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성해져 마치 플라타너스 동굴을 걷는 듯 착각을 일게 한다.

■ 빌딩숲 사이로 난 도심속의 산책로

도심의 높은 빌딩들 사이사이에도 자세히 보면 나무 한그루 숨 쉴 수 있는 작은 공원이 있으며, 아스팔트 길 너머로 가다보면 흙길로 이어지는 봄 길을 만날 수도 있다. 아직은 도심 곳곳에도 휴식을 선사해주는 산책로들이 있어 다행이다.
▶ 드라이브 코스로만 알려졌던 북악스카이웨이가 일반에 공개된 건 몇 해 전. 찻길 옆의 소담한 산책로는 북악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걷는 맛이 쏠쏠한 이 산책로를 따라 약간 경사진 길로 접어들면 코에 닿는 공기의 성분부터 다르게 느껴진다. ‘하늘길 산책로’로 접어든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백사 이항복의 별장 터로 추정되는 백사실. 연못 터 주변에 놓인 벤치는 산책의 여운을 음미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다.

▶ 낙산공원 산책로도 화사한 봄의 얼굴로 나들이객을 맞는다. 지난 2002년 4만6000여 평의 낙산공원을 조성하면서 만들어진 제1전망광장과 낙산정에 올라서면 서울도심 한복판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전망을 즐긴 다음엔 S자형으로 난 호젓한 길을 따라 산책을 해볼 만하다. 이 길은 <파리의 연인>을 비롯한 TV드라마와 영화 등의 촬영이 이뤄지면서 산책코스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벚나무, 조팝나무, 목련나무 등 꽃나무들을 벗 삼아 자연을 즐기는 한편 역사 탐방도 겸할 수 있다. 동대문에서 혜화문까지 폭 3∼4m의 역사탐방로가 조성돼 있는 덕분이다.

▶ 편안한 느낌으로 산책을 즐기기에 좋은 북촌 길은 크게 3가지 코스로 나누어진다. ‘옐로 존’으로 불리는 첫 번째 산책길은 북촌마을을 대표하는 큰 길로, 왼편으로는 경북궁 돌담길이, 오른편으로는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소문난 레스토랑들과 북 카페 등이 들어선 이 거리는 골목과 계단, 담벼락의 조화만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길이다.

‘블루 존’인 두 번째 산책길은 금호미술관을 출발해 갤러리 예맥, 트렁크갤러리, 갤러리 스케이프에 이르는 코스. 아트선재센터를 등지고 정독도서관을 지나쳐 걸어가면 조용한 주택가와 현대적인 화랑들이 조화를 이룬 여유로운 풍경을 만나게 된다. 북촌만의 오래된 정서를 느끼고 싶다면 재동초등학교를 지나 가회동 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선택해 보자. ‘레드 존’인 세 번째 산책길은 아라리오 미술관, PMK갤러리에 다다르는 코스로 북촌만의 아늑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멋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