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曰(시왈),父兮生我(부혜생아)하시고 母兮鞠我(모혜국아)하시니,
哀哀父母(애애부모)여 生我劬勞(생아구로)셨다.
欲報之德(욕보지덕)인대 昊天罔極(호천망극)이로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버님이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기르시니,
아! 슬프도다,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시고 고생하셨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나, 은혜가 하늘과 같아서 다함이 없도다.
너무 좋은 말씀이고 명언이다.
그런데 그 뒤에 숨어 있는 의미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토록 좋은 말을 왜 실천하기를 주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극 소수일까?
아마도 이것은 받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받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은혜란 무엇일까?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는 공자의 논어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것으로, BC 6세기경 중국 제(齊)나라의 왕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한 말이다.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권위와 자세, 신하는 신하로서의 역할과 의무, 부모는 부모로서의 위엄과 자애로운 태도,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부모에게 대한 효도와 도리를 해야만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건전하고 평화와 번영이 있으며 이것이 곧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공자의 말씀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 날 효에 대해서 젊은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효를 해야할 사람의 온갖 규범과 의무와 책임은 있으되 효를 받아야 할 사람의 규범과 의무와 책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효를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효도를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효를 받아야 할 사람의 구분은 무엇일까?
효를 해야 할 사람의 구분은 무엇일까?
받고자 하는 사람은 있으되 할려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이를 기준으로 효를 행할 사람과 받을 사람을 나눠야 할까?
그럼 효를 받을 사람은 효를 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런데 대부분의 효 강의를 들어보면 효도를 해야할 이유만을 나열하고 거기에 맞는 이론만 펼친다.
나이, 신분, 권력, 물력, 학력 등 온갖 말도 되지 않는 논리만 내세우며 효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 성현을 이야기하고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외부에 비친 이미지만 내세운다.
그 속에 숨겨운 온갖 불평등과 불합리는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효부가 있다고 하자.
좋게는 부모에게 효도를 잘 하는 사람이라며 그 행실을 칭찬한다.
그러나 효부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인간적인 삶은 외면한다.
그 효부에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 행복했었냐고...
대부분 시집살이가 힘들면 힘들수록 효부란 말을 듣는 것같다.
효자, 효녀도 마찬가지다.
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이야기 하려든다.
하는 사람의 고충은 그저 감내해야 할 일쯤으로 치부해버린다.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효가 필요없는 구시대적 유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효도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효도를 해야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먼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시켜줄려고 하면 어떨까?
시부모는 며느리를 먼저 생각하고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그들이 느껴야 하는 고충을 먼저 해결해줄려고 한다면 어떨까?
부모나 어른들이 자신들이 누릴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식이나 어린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살것인가를 고민하고 교육하는 것은 어떻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까?
항상 받을려고 하는데서 문제는 출발한다.
받지 못했을때 화나고 상대를 꽤심하다고 생각한다.
줄려고 했을때 받는 사람이 안받으면 섭섭하다고 생각하지만
받을려고 했을때 안주면 화나는 것이 인지 상정이 아닐까?
이제 부터라도 효를 받는 것에서 주는 것으로 바꾸는 교육과 문화가 필요한 것 같다.
효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哀哀父母(애애부모)여 生我劬勞(생아구로)셨다.
欲報之德(욕보지덕)인대 昊天罔極(호천망극)이로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버님이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기르시니,
아! 슬프도다, 부모님이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애쓰시고 고생하셨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하나, 은혜가 하늘과 같아서 다함이 없도다.
너무 좋은 말씀이고 명언이다.
그런데 그 뒤에 숨어 있는 의미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토록 좋은 말을 왜 실천하기를 주저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극 소수일까?
아마도 이것은 받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받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은혜란 무엇일까?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는 공자의 논어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것으로, BC 6세기경 중국 제(齊)나라의 왕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한 말이다.
즉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권위와 자세, 신하는 신하로서의 역할과 의무, 부모는 부모로서의 위엄과 자애로운 태도,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부모에게 대한 효도와 도리를 해야만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건전하고 평화와 번영이 있으며 이것이 곧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공자의 말씀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 날 효에 대해서 젊은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효를 해야할 사람의 온갖 규범과 의무와 책임은 있으되 효를 받아야 할 사람의 규범과 의무와 책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효를 해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효도를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효를 받아야 할 사람의 구분은 무엇일까?
효를 해야 할 사람의 구분은 무엇일까?
받고자 하는 사람은 있으되 할려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나이를 기준으로 효를 행할 사람과 받을 사람을 나눠야 할까?
그럼 효를 받을 사람은 효를 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런데 대부분의 효 강의를 들어보면 효도를 해야할 이유만을 나열하고 거기에 맞는 이론만 펼친다.
나이, 신분, 권력, 물력, 학력 등 온갖 말도 되지 않는 논리만 내세우며 효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 성현을 이야기하고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외부에 비친 이미지만 내세운다.
그 속에 숨겨운 온갖 불평등과 불합리는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효부가 있다고 하자.
좋게는 부모에게 효도를 잘 하는 사람이라며 그 행실을 칭찬한다.
그러나 효부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인간적인 삶은 외면한다.
그 효부에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 행복했었냐고...
대부분 시집살이가 힘들면 힘들수록 효부란 말을 듣는 것같다.
효자, 효녀도 마찬가지다.
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이야기 하려든다.
하는 사람의 고충은 그저 감내해야 할 일쯤으로 치부해버린다.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효가 필요없는 구시대적 유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
효도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효도를 해야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먼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시켜줄려고 하면 어떨까?
시부모는 며느리를 먼저 생각하고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그들이 느껴야 하는 고충을 먼저 해결해줄려고 한다면 어떨까?
부모나 어른들이 자신들이 누릴려고 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식이나 어린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떻게 살것인가를 고민하고 교육하는 것은 어떻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세상은 바뀌지 않을까?
항상 받을려고 하는데서 문제는 출발한다.
받지 못했을때 화나고 상대를 꽤심하다고 생각한다.
줄려고 했을때 받는 사람이 안받으면 섭섭하다고 생각하지만
받을려고 했을때 안주면 화나는 것이 인지 상정이 아닐까?
이제 부터라도 효를 받는 것에서 주는 것으로 바꾸는 교육과 문화가 필요한 것 같다.
효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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