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단풍 든 먼 산의 풍경과 이름 모를 야생화 천지인 들판,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동화적 하늘. 가을은 액자마저도 탐낼 풍경들로 가득 차 있다. 육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내륙의 바다인 호수에 투영된 가을은 실제의 모습에 환상까지 더해져 하나의 절경을 연출해낸다. 지금 가을은 호수와 만나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보내는 중이다. 호수와 사랑에 빠진, 가을날의 풍경을 그려본다.

■ 호수는 낭만적 가을을 담는 거울이다

자고로 호수의 아름다움은 주변 자연 경관에 의해 결정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산정호수는 아름다움의 조건을 타고난 호수다.

‘산에 묻힌 우물’이라는 뜻의 산정호수는 호수에 비친 명성산을 바라보며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이맘때 호숫가 산책로에는 낙엽이 켜켜이 쌓여 있어 걸을 때마다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발밑에서 바스락거린다. 물 냄새에 섞여 오는 낙엽 냄새와 흙냄새를 맡으며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데는 보통 1시간 정도가 소요되지만 군데군데 호수를 조망하며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어, 산정호수를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더욱이 해질녘 호수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는 가로등은 색다른 낭만을 불러와 저녁때를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호숫가의 산책이 지루해질 무렵에는 산책로와 연결된 구름다리에 올라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 호수 주변으로 자인사와 등룡폭포, 비선폭포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전북 임실군과 정읍시를 잇는 옥정호는 물안개와 함께 주변의 산세가 아름다워 더욱 돋보이는 호수다. 옥정호는 노령산맥 줄기 사이의 임실과 정읍 일대를 흐르며 때 묻지 않은 빼어난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특히 산중턱의 국사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수 일대는 푸른 물빛과 기암괴석, 거기에 고운 단풍 숲까지 고스란히 비추고 있어 여느 수채화 못지않은 멋을 뿜어낸다. 옥정호를 에두르며 나 있는 드라이브 코스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힐 정도로 매혹적이어서 이즈음 호수 주변 길에는 드라이브를 즐기는 이들로 분주해진다.

■ 태곳적 신비를 담은 주산지와 고삼지

경북 청송의 명물인 주왕산 인근에 자리 잡은 주산지는 숙종 46년인 1720년 8월에 착공해 그 이듬해 10월인 경종 원년에 완공된 저수지다. 주산지는 아무리 혹독한 가뭄이 들어도 물이 줄어들지언정 바닥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인해 관심을 받기 시작한 주산지는 사실 어느 한 계절 매혹적이지 않은 때가 없다. 하지만 이곳이 가장 붐비는 때는 단연 가을이다. 가을날 주산지는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로 웅성댄다. 주산지의 아름다움은 새벽과 아침 사이, 호수 가득 피어오르는 물안개에서 비롯되는 까닭이다. 150년 이상을 주산지와 함께해온 노거수(老巨樹) 30여 그루를 휘감아 사방으로 번지는 물안개는 태곳적 신비로움 그 자체다. 아침 햇살이 물안개를 침투해 호수에 닿는 모습마저 비현실적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물안개가 지나간 자리에는 막 염색을 마친 듯 곱디고운 주왕산의 단풍이 수면 위로 투영된다. 그리고 바람이 호수에 닿으면 단풍 모양의 페브릭이 물결치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일찍이 주왕산 9경 중 하나로 꼽힌 주산지는 산책하기에도 그만이다. 주왕산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흙냄새 가득한 낙엽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올려다보면 현실의 주왕산을,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호수에 담긴 몽환적 가을까지 두루두루 눈과 가슴에 담아올 수 있다.

붕어 낚시의 요람이자 호반 드라이브길 또한 일품인 경기도 안성의 고삼지 역시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할 만큼 멋스러운 풍치를 담아낸다. 특히 이른 아침, 저수지 가득 피어나는 물안개가 물 위에 떠 있는 수상좌대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그림을 연출해낸다. 영화 ‘섬’의 촬영지로도 잘 알려진 이곳은 ‘육지속의 바다’로 부를 만큼 방대한 스케일을 갖추고 있다. 드넓은 크기만큼 물고기들도 풍부해 낚시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곳이다.

■ 가을을 투영한 드넓은 호수! 충주호&예당호

충북 제천시 금성면 월굴리에서 청풍면 후산리까지 달리는 지방도 532호선은 충주호를 끼고 도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길에 들어서면 숲 깊숙한 곳까지 차오른 충주호 자락을 만나게 된다.

더불어 이 길에서 만나는 충주호는 낚시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를 말해주듯 리아스식 해안을 연상시키는 구불구불한 호수 가장자리에는 저마다 낚싯대가 드리워져 있고, 낚시꾼들은 저마다 단풍 든 호수를 정물처럼 응시하고 있다.

또한 문화재들과 드라마세트장이 들어서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는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가득하지만, 온 산의 단풍들을 모두 투영한 충주호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것도 특별한 감흥을 불러온다. 이러한 충주호의 풍경은 월악산 봉우리에서도 조망된다. 실제로 충주호의 아름다움을 조망하기 위한 목적만으로 월악산을 등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볼거리가 많은 충주호는 직접 유람선을 타고 둘러 볼 수도 있다. 여러 나루터들 중 가장 경치가 좋은 구간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청풍나루~장회나루 구간이 손꼽힌다. 유람선 나들이는 그 자체로도 낭만적이지만, 이즈음엔 단풍이 수놓은 드넓은 호수를 가르며 달리는 색다른 재미까지 추가할 수 있다.

한편 충남 예산의 예당호는 여의도 면적의 3.7배에 달하는 규모로 단일 저수지 중에서는 단연 국내 최대다. 차로 도는 데만 2시간이 족히 걸릴 정도. 바다만큼이나 드넓은 예당호의 모습을 한눈에 담고 싶다면 예당관광지 내 조성되어 있는 팔각정에 오르면 된다. 그곳에 올라 예당호를 내려다보면 마치 산 정상에 오른 양 인근 봉수산의 가을이 그대로 전해진다.

BLOG main image
건강한 삶, 즐거운 삶,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가치노을의 세상이야기 by 가치노을

공지사항

카테고리

가치노을 (504)
孝이야기 (3)
세상이야기 (257)
일상다반사 (98)
아침을 여는 좋은글 (46)
여행이야기 (15)
자동차이야기 (85)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