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은 동백을 사랑에 빠진 여인에 비유했다. 차마 고백은 못하고 온 겨울 피었다 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마음 약한 여인. 임 오신단 소식이라도 비칠 양이면 온몸으로 떨어져 붉은 융단을 깔고, 마지막 모습마저 곱게 기억되고 싶어 송이송이 고혹적으로 땅에서 또 한 번 만개하는 동백. 보길도에는 이토록 고운 마음의 동백이 군락을 이루고 산다.
 
생화로, 낙화로 섬 전체를 붉은 감동으로 가득 채운 동백의 정원에 들어서 보면…….

■ 혹시 동백꽃 1번지를 가 보셨나요?

겨울에 생의 절정기를 보내는 동백은 완도에서 배로 12km 들어가면 만나는 호젓한 섬 보길도에서 맨 처음 꽃망울을 터뜨린다. 한번 피었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버리는 보통의 야박한 꽃들과 달리 동백은 겨우내 피고지고를 반복한다. 해서 보길도의 겨울은 흰 눈과 더불어 곳곳에서 점점이 붉은 혈흔 같은 동백을 쉽게 만나게 한다.

고산 윤선도를 빼놓을 수 없는 보길도는 동백 역시도 그를 외면하지 않는다. 보길도의 동백장관은 고산의 흔적이 그대로 배어있는 세연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까닭이다. 500년은 족히 넘은 오래된 수령의 동백나무는 무채색의 세연정 안에서 유일하게 컬러감이 들어간 곳. 동백이라도 만개할라치면 오랫동안 잠자던 유적이 동백의 기척으로 서서히 눈뜨는 느낌에 젖기도 한다.

고산이 전달하는 고즈넉한 서정과 더불어 동백을 즐기려면 연못을 건너 세연정의 맞은편으로 건너가는 것이 좋다. 그곳에서 붉은 동백 숲을 병풍 삼아, 낙화한 동백이 세연정 물살에 고혹적으로 떠다니는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그 누구라도 가슴에 시 한 수 고이는 건 시간 문제다.
 
고산의 품 안을 벗어나도 보길도 동백의 아름다움은 계속된다. 세연정에서 부용리마을 어귀까지 이어지는 길은 보길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수려한 동백길. 특히 낙화가 시작되면 이 길은 곧 동백 융단으로 붉게 물들어 걸음걸음을 축제로 만든다.  

몽돌밭으로 유명한 예송리해수욕장 주변의 방풍림에도 그러한 동백의 세상이 마음껏 펼쳐져 있다. 바닷가와 마을 사이에 자리 잡은 특이한 숲인 방풍림에는 다른 지역의 방풍림이 대부분 소나무 숲인데 반해 이곳은 팽나무, 측백나무, 동백나무 등 활엽상록수림 천지다. 그중에서도 역시나 이 숲의 주인공은 동백나무이다. 울울창창한 상록수림 사이로 비치는 동백의 붉은 살점과 바닥에 흩뿌려진 붉은 낙화는 동박새의 지저귐과 함께 아득한 동백 향에 취하게 한다. 

■ 보길도 동백의 숨은 매력, 삼색 동백

겨울이 시작되면서 봉오리를 맺기 시작하는 보길도의 동백은 어느 때보다도 2월에 가장 화려하게 만개한다. 따라서 2월의 보길도는 동백 하나만으로도 벌써 봄 분위기가 충만해져 상춘객을 유혹하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보길도 동백만의 특별한 비밀도 한몫 하고 있다. 바로 이곳에서 삼색 동백꽃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삼색 동백이란 백동백, 흑동백, 선홍빛 동백을 말하는 것으로 백동백과 흑동백은 여느 동백 군락지에서 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보길도 섬 전체가 동백 몸살을 앓기 시작할 즈음이면, 보길도 정자리 김전씨 고택 정원에는 보석보다 더 귀하다는 백동백과, 검은 물이 똑똑 떨어지는 흑동백이 한창이다. 이렇듯 숨은 매력이 있는 백동백과 흑동백은 모처럼 보길도로 동백꽃나들이 온 관광객들에게 생애를 통틀어 진귀한 볼거리를 제공함은 물론이다.

아름다운 빛깔의 동백 외에도 이즈음 보길도를 돋보이게 하는 봄의 조연들은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동백과 더불어 보길도의 겨울에 생기를 부여해 온 청보리밭과 동백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이곳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2월의 보길도를 조금씩 채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보길도는 유적지와 관광지로 점철된 섬이다. 내딛는 족족 이름부터 낯익은 명소들의 도미노가 펼쳐진다. 그런데 거기에 동백까지 흐드러지니, 보길도의 겨울은 뭍의 봄보다 화려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 보길도에 버금가는 동백 여행지를 꼽다

▶ 5000여 그루의 붉은 장관, 여수 오동도-오동도는 전국 최대의 동백 군락지. 5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수목과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섬 곳곳에서 자란다. 오동도 전체가 붉은 동백으로 타오르는 시기는 2월 말에서 3월. 가장 흐드러지게 피는 곳은 식물원 뒤쪽 산책로 쪽이다. 

▶ 숲의 7할은 동백, 여수 거문도-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의 세 섬으로 이뤄진 섬으로 전체 숲의 70%가 동백나무다. 특히 등대로 향하는 동백나무 숲길은 1km 남짓 이어지는데, 푸른 바다와 울창한 동백나무 숲이 부러 연출해 놓은 것처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섬을 아우르는 해안 절벽은 힘이 넘치고 붉디붉은 꽃으로 수놓인 풍광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 100년 넘은 아름드리 동백군락, 거제 지심도-장승포항에서 뱃길로 30여 분 들어가는 지심도는 수령 100년 이상 된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으로도 불린다. 길마다, 민가마다 붉은 낙화 일색이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동백꽃 길은 2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꽃을 피워 2월 말에서 3월 중순에 만개한다. 
 
▶ 12m 높이의 동백나무 숲, 남제주 신흥리-남제주읍 신흥리의 동백나무 군락은 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수의 명목으로 심어진 것. 현재 남아있는 동백나무는 50여 그루에 불과하지만 동백꽃이 만개하면 신흥리 마을 전체에 동백꽃 향기가 진동한다. 제주는 워낙 고목의 동백이 많았다가 사라지고 했던 곳이라 북제주, 중문, 서귀포 시내 등지 등 다양한 곳에서 이르면 12월부터 늦게는 4월까지도 동백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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