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은 장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연극무대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잔뜩 움츠린 어깨들과 생기를 소진한 아스팔트, 맨몸으로 선 가로수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겨울은 누구에게나 가혹한 계절일 것이다.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눈 내리는 겨울이 존재한다. 어느 날인가,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혔을 때 드러나는 순백의 풍경은 사람을, 세상을 착하게 만든다. 도시를 덮은 눈 담요의 마법도 이 정도인데 지리산, 덕유산처럼 기본 실루엣만으로도 장관인 그곳에 눈이 내린다면? 이 즐겁고도 유쾌한 상상은 여러분 각자의 몫이다.

■ 겨울의 진경산수는 눈을 즐겁게 한다

눈 많이 내리기로는 제주의 한라산을 빼놓을 수 없다. 한라산은 우리나라 가장 남쪽에 위치하면서도 가장 많은 눈이 내려앉는 산이다. 한라산의 눈은 대개 폭설이 되곤 하는데 폭설이 다녀간 후에는 영실 쪽 해발 1600m대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대의 구상나무 군락지가 일대 변신을 한다. 1~2m가량의 눈에 뒤덮여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눈꽃터널로 변신하는 것이다. 바람이라도 불어 후두둑 눈 세례라도 맞을라치면, 구상나무 특유의 향이 진동하는데 가슴을 명쾌하게 만드는 향기는 시각적 감동과 견줄만하다. 한라산의 서쪽 중턱을 관통하는 제2횡단도로(99번 국도=1100도로)에서 가장 높은 1100고지 휴게소 부근의 눈꽃도 볼만하다.

평창군과 강릉시의 경계를 이루는 대관령 주변은 일단 눈이 쌓이면, 겨울 내내 아름다운 설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말 그대로 눈 주는 곳마다 아름다운 눈 세상이다. 소나 양을 기르는 목초지가 많은 곳이어서 드넓게 펼쳐진 눈밭을 감상하기에 좋다. 부드러운 구릉과 낙엽송 무리의 어울림은 그림이 따로 없다. 횡계리 일대의 황태 덕장은 또 다른 볼거리. 들판을 메우다시피 깔린 덕장에서 익어가는 명태 무리가 장관을 이룬다. 눈이라도 덮이면 덕장 풍경은 서정의 극치를 뽐낸다.

대관령 눈길 걷기 여행의 백미는 선자령 산행이다. 대관령 옛 휴게소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올라 정상까지 4.9㎞다. 길이 완만하고 험하지 않아 방한복 등으로 단단히 무장한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다. 기상대 옆길을 올라 국사성황당을 지나면 중계소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산길이 시작돼 드넓은 눈밭과 흰 꽃나무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백두대간 종주길 능선이기도 한데, 바람이 매서울 때가 많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눈보라는 심해지고, 설경은 볼만해지는데 날이 맑으면 강릉시내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강원 태백시와 영월군, 경북 봉화군의 접경지대. 첩첩산중의 한복판이자 백두대간의 주요 길목에 ‘크고 밝은 산’태백산이 솟아 있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신성시해 온 산으로 높이 1567m 산꼭대기엔 돌을 쌓아 만든 제단(천제단)이 있다.
하늘과 사람과 땅에 제사를 올려온 곳이다. 이렇듯 신성하고 큰 산이지만, 산세가 비교적 완만하고 부드러워 눈길 산행을 다녀올 만하다. 눈에 덮인 낙엽송 숲이 아름답고 거센 바람에 몸을 뒤틀며 늘어선, 수백 년 묵은 주목 무리들이 보여주는 눈꽃이 장관이다. 처음엔 낙엽송 숲이 반겨주고, 막바지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거대한 주목들이 볼거리를 선사한다. 산자락과 정상 능선 주변에 평균 나이 200년인 아름드리 주목들이 흩어져 있다. 이들이 얼음꽃, 눈꽃을 뒤집어 쓰고 바람에 휩쓸리며 버티고 늘어선 모습이야말로 겨울 태백산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은 해발 1614m. 눈꽃 길 걷기의 명소 중 하나다. 눈 덮인 한겨울 이 높은 산을 처음부터 오르기는 험난한 일. 그러나 무주리조트에서 운행하는 관광 곤돌라 덕분에 노약자라도 편하게 눈꽃 길을 거닐 수 있다. 곤돌라가 닿는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이어지는 산길과 향적봉에서 중봉까지의 주목 군락지가 눈꽃과 상고대 감상의 포인트다. 설천봉~향적봉은 20분 거리, 향적봉~중봉은 15분 거리. 가벼운 산행으로 가지마다 눈꽃을 피우고 늘어선 숲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눈이 오지 않더라도 기온이 영하권을 유지한다면 나뭇가지에 새하얗게 맺힌 상고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꼭대기에 오르면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주변 산줄기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추위를 잠시 잊게 만드는 얼음 장관은 또다른 선물이다. 

전라남도 무등산 용추폭포에 영하의 겨울이 다가오면 바로 아름다운 동화 같은 한 폭의 얼음 나라가 탄생한다. 변산반도 채석강 또한 겨울이 되면 또 하나의 예술품을 세상에 드러내는데, 볕이 안 든 응달의 단층에 매달린 고드름 세상이 그것이다. 눈꽃에 버금가는 얼음꽃 비경도 놓치기 아깝다. 얼음꽃 명소로는 덕유산이 첫손에 꼽힌다. 특히 서봉에서 남덕유산을 향하는, 연줄처럼 휘어진 능선의 얼음꽃 터널은 흡사 예술의 경지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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